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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정공>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공휘영권묘갈명(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公諱永權墓碣銘)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公諱永權墓碣銘 公生于忠孝之門天性質直不修邊幅躬耕養親志體無缺喪祭盡禮鄕里欽歎兄弟交相愛喫着與共敎子侄以義方與朋友交久而敬一切聲色翫好不留於心只保宗宜家爲終身事業 高宗壬午九月十五日卒距其生 純祖乙酉壽五十七葬順天郡住巖面五峯山向甲原壬辰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以長男春根貴也今年壬戌將立石表阡使族孫炳寬余文嗚呼公之姿純行篤無愧古人而沒齒草野不自表見知者惜之然幸有哲嗣思以文字賁其墓隧以圖不朽視世之名位隆赫當時身後即便衰謝終無可觀者優劣何如哉此其可書也公諱永權字汝衡玉川人高麗檢校門下侍中諱璋爲鼻祖孫諱元吉號農隱典工判書玉川府院君諡忠獻生諱瑜號虔谷典農副正以忠孝旌閭孫諱智崑昆季友篤築亭扁以相好湛樂其中宰井邑治績見輿地勝覽曾孫諱大承泰仁縣監吏民歌其治績生諱珏訓鍊奉事有孝行四傳諱東耘諱新命拂仕諱廷直 贈司僕寺正諱贄祥贈承旨即高祖以下四世妣淑夫人義城金氏東源女初配 贈貞夫人竹山朴氏夏永女忌癸亥四月二十日墓同域異塋繼配 贈貞夫人金海金氏廷奎女忌乙巳十月三十日墓祔一男即春根陰嘉善大夫一女婿靈光金箕龍初配出次鎭根世根繼配出春根無嗣子世根子大鉉光山金晩植文化柳興碩二女婿鎭根一男昌鉉文化柳日永一女婿世根三男即大鉉次庠鉉宗鉉女婿光山金可均餘幼系曰木晦根枝葉繁報不食于後昆欝松柏蔭五峯過者式四尺封 德水 李商永 撰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공휘영권묘갈명(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公諱永權墓碣銘) 공(公)은 충효(忠孝)한 가문에 태어나, 천성이 곧으므로 변폭(邊幅:겉으로 꾸밈)을, 일삼지 않고 몸소 밭갈어 어버이를 섬기며 뜻과 몸을 흠철 없이 봉양하고, 초상 장사에 예제를 다하니 향리가 흠탄했다. 형제간에 서로 우애(友愛)하여 먹고, 입는것을 같이 하였고, 자질(子侄)에겐 의방(義方)을 써서 가르치고 벗을 사귈때는 오래토록 공경하여 성색완호(聲色翫好)를 일체 마음에 두지 않고 단 가종(家宗)을 보호하고, 집안 잘 다스리는 것으로 평생 사업을 삼았다. 고종임오(高宗壬午:一八八二)년 九월 十五일에 세상을 떠난 그는 순조을유(純祖乙酉:一八二五)년에 태어났으므로, 수(壽)는 五十七세 묘는 순천군(順天郡) 주암면(住巖面) 오봉산(五峯山) 신원(甲原)이다. 그리고 임진(壬辰)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증직으로, 받은 것은 공(公)의 장남 춘근(春根)이 귀(貴)하게 되었던 때문이다. 임술(壬戌)인 금년에 돌을 세워 무덤에 표(表)하려, 하면서 족손(族孫) 병관(炳寬)을 시켜 나에게 글을 청한다. 아! 공(公)은 자질이 순전하고 행실이 돈독하여, 고인(古人)에 비하여 부끄러울게 없으나, 한평생을 초야에 묻혀 지내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니, 아는 사람은 애석하게, 여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훌륭한 아들이 있어 묘도에다 문자(文字)를 써서 썩지 않게 하려 하고있으니 저 세상에 이름난 사람들, 당시에는 명예와 지위가 융혁(隆赫)하다가 그가 죽고나면, 곧 쇠잔하여 최후엔 아무 볼게 없는 이들에 비추어 볼때, 그 우열(優劣)이 어떻다 하겠는가! 다시말해서 이런일이면 쓸만하다. 공(公)은 영권(永權) 자(字)는 여형(汝衡) 옥천인(玉川人)으로서, 고려(高麗)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 장(璋)이 시조이다. 그의 증손 원길(元吉)은 호(號) 농은(農隱) 전공판서(典工判書)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시(諡) 충헌(忠獻)이요. 그의 아들 유(瑜)는 호(號) 건곡(虔谷) 관(官) 전농부정(典農副正)인데 충효(忠孝)로 정려(旌閭)가 있고 건곡의 손자 지곤(智崑)은 형제간에 우애하여 상호정(相好亭)이란 집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담락(湛樂)한 마음으로 모두 함께 지냈으며, 또한 정읍(井邑) 현감이 되었는데 그 사실이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보인다. 증손(曾孫) 대승(大承)은 태인(泰仁) 현감(縣監)이었는데, 그 고을 관리와 백성이 그의 치적(治績)을 노래하였고, 대승이 낳은 각(珏)은 훈련봉사(訓鍊奉事)이며 효행이 있었다. 四 전하여 동운(東耘)과 신명(新命)은 벼슬하지 않았고, 정직(廷直) 증직(贈職)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이되었고 지상(贄祥)은 증직(贈職)으로 승지(承旨)였는데, 이들은 곧 공(公)의 고조(高祖)이하 四세(四世)이다. 비(妣)는 숙부인(淑夫人) 의성김씨(義城金氏) 동원(東源)의 딸이고, 배는 정부인(貞夫人)으로 죽산박씨(竹山朴氏) 하영(夏永)의 딸인데 계해(癸亥) 四월 二十일이 제일(祭日)이며 묘는 공과 같은곳 다른자리이다. 계배는 역시 정부인(貞夫人)으로 김해김씨(金海金氏) 정규(廷奎)의 딸인데, 제일(祭日)은 을사(乙巳) 十월 三十일 묘는 공과 같은, 자리에 있다. 일남(一男)은 춘근(春根)인데 음직(陰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냈고 한 딸은 영광(靈光) 김기룡(金箕龍)의 처인데 첫부인이 낳았고, 진근(鎭根) 세근(世根)은 둘째 부인이 낳았는데 춘군(春根)이 아들이 없어 세근(世根)의 아들 대현(大鉉)으로 아들을 하였고 광산(光山) 김만식(金晚植) 문화(文化) 유흥석(柳興碩)은 두 사위다. 진근(鎭根)의 아들은 창현(昌鉉) 문화(文化) 유일영(柳日永)은 사위이며, 세근(世根)의 三남(三男)은 대현(大鉉) 상현(庠鉉) 종현(宗鉉)이고 그 밖에는 모두 어리다. 이어 쓰기를 뿌리가 굳으면 지엽(枝葉)이 부성키로 木晦根葉枝繁 불식(不食)의 은혜를 후손에게 주었네! 報不食于後昆 울창(鬱蒼)한 송백(松柏)들이 오봉(五奉)을 덮고 있어 欝松柏蔭五峯 지나는이 넉자 무덤 앞에 구부려 절하겠네 過者式四尺封 덕수(德水) 이상영(李商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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